2014년 10월 어느 날 밤 11시 40분쯤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흑인 동네 노스센트럴(North Central). 이 동네에 사는 이태후(51) 목사는 집에 있다가 스무 발 넘는 총소리를 들었다. 두 명의 흑인 갱들이 어떤 남자의 집에 쳐들어가 총 36발을 난사한 사건이 일어난 날이었다. 잔인하게 살해된 남자의 초등학교 3학년 조카는 삼촌과 TV를 보고 있다가 괴한들이 쏜 총알들이 삼촌 몸에 박히는 것을 봐야 했다. 이 목사는 잠시 눈을 감았다. "생각해보세요. 그 아이가 들었던 그 총소리, 터져버린 총알이 내뿜는 화약 냄새. 이런 것들이 아이에게 얼마나 끔찍한 트라우마가 될지요. 우리 동네에선 이런 사건들이 일상이에요. 제가 그곳에서 목회를 하게 된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이 목사는 2003년부터 21년째 노스센트럴에서 살고 있다. 서울대 미학과와 서울성경신학대학원대학을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필라델피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졸업한 그는 뉴욕 한인교회에서 7년 동안 사역하다가 이곳에 정착했다. 노스센트럴은 미국에서도 가장 범죄율이 높은 지역 중 하나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 4년 연속 미국에서 가장 살인사건이 많이 일어난 도시로 꼽혔다. 주민 94%가량이 흑인이고 이 중 45%가 절대 빈곤층 또는 빈민으로 분류된다. 2006년도 인구 센서스에 따르면 이 지역 건물 중 44%가 빈 채로 버려졌다. 전기와 수도가 끊긴 빈집에서 지내는 불법 거주자(squatter)들이 활개를 치고, 마약 관련 사건·사고와 총기 살인 소식이 끊이지 않는 동네다. 필라델피아 시경이 이곳에서 하루 137명의 마약 사범을 검거한 날도 있었다. 이 목사는 "처음 온 사람은 대낮에도 차에서 내리기는커녕 차를 세우기도 무서워하는 동네"라고 했다. 그는 대체 왜 이런 우범 지역에 갔을까.
이태후 목사가 이 지역에서 더욱 유명해진 건 2006년부터 매년 여름 한 달간 골목길 한 블록에 차가 다니지 못하도록 거리를 막아놓고 동네 아이들을 맘껏 뛰어놀게 하는 이른바 ‘여름 캠프’를 시작하면서부터다. 처음 캠프를 열 때만 해도 아이들이 15명 정도 모였는데, 요즘엔 6~15세 아이들 140명가량 찾아온다고 했다.
―길거리에서 열리는 여름성경학교 같은 건가요?
“비슷해요. 여름방학 기간에 시청에 ‘플레이 스트리트(Play Street)’라는 프로그램을 신청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됐어요. 빈민가 아이들을 위해 매일 아침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차가 다니지 못하도록 길을 막아놓고 아이들을 뛰어놀도록 해준다는 거죠. 시청에서 공짜로 점심도 준다고 하고요. 이곳 아이들은 방학이 되면 딱히 갈 데가 없어서 방황하거든요. ‘내가 그걸 신청해서 진행하고 자원봉사자를 불러 모은 뒤 아이들에게 밥도 주고, 공부도 가르치고, 실컷 놀게 해주면 좋겠다’ 싶었죠.”
―캠프에선 뭘 가르칩니까.
“4주간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열리는데, 월·화·목요일은 정규 수업을 해요. 아침엔 간단하게 찬양을 배워요. 점심을 먹고 나서는 그림을 그리거나 만들기를 하고 다 같이 마셜 아트(태권도나 가라테, 유도 등의 격투 기술)를 배우기도 하죠. 수요일엔 다 같이 버스를 타고 45분쯤 떨어진 공용 수영장에 가서 물놀이를 하고요. 금요일엔 소풍을 가요. 수족관에도 가고 동물원에도 가고. 그야말로 다 같이 한 달간 재밌고 신나게 노는 거예요.” 이 목사는 설명과 함께 캠프 현장을 녹화한 동영상을 보여줬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얼굴에 그림을 그려가며 깔깔 웃는 아이들의 환한 표정이 동영상 가득 펼쳐졌다. 우범 지역에서 열리는 여름 캠프 풍경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성경 공부도 하나요.
“아침에 짧게 하는데, 이때 사람에게 살아가면서 필요한 기본 윤리를 가르치죠. 왜 땀 흘려 일을 해야 하는지, 가족이 무엇인지, 결혼을 하는 것은 왜 중요한지 같은 것들이요. 이 동네 아이들은 대부분 일을 해서 돈을 버는 법을 배우지 못하거든요. 어렸을 때 자연스럽게 마약부터 손대게 되죠. 아버지들도 보통 집에 없어요. 아이가 넷인데 그 아빠가 모두 제각각인 집도 있고요. 생명을 낳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것, 그런 것들을 가르칩니다.”